2006년 12월 13일.


새벽 4시 근처.


서울 양재에서 새벽 3시 조금 넘어 잠이 들었는데 아내 구윤희 여사의 호출벨 소리가 들렸다. 출산 예정일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혹시나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내 목소리의 내용은 '진통이 오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직 일주일 정도나 남았는데 벌써 진통이 오려나 싶기도 해서 산부인과에 가서 진찰을 받은 후 다시 연락을 주겠지 생각하고 연락을 기다리다가 잠시 눈을 붙였나 보다.


오전 6시에 장모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아내 윤희가 진통을 시작해서 산부인과에 입원했는데 언제 내려올 것이냐고 물으셨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진통?, 입원?' 부랴부랴 씻고 정리하고 바로 강남에서 버스를 탔다. 물론 다른 모든 일들은 그냥 핸드폰 문자로 대신했다.


대전에 도착해서 아내가 입원해 있는 모태산부인과로 직행했다. 그리고 아내가 진통하는 아픈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여기저기 주무르고 기도하고 안아주고 흘려보낸 시간이 대충 5시간. 아내는 진통 9시간 만에 분만실에 들어갔다.


정확히 오후 2시 11분.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기가 태어나는 분만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내 손으로 태어난 아기의 탯줄을 잘랐다. 자연분만하느라 너무 고생한 아내는 태어난 아기를 옆에 안겨주자 옆에 있는 간호사에게 한마디 물었다.


"얘가 누굴 닮았어요?"


참, 여유가 있었던 건지, 정신이 없었던 건지. 다만 그 당시 바로 옆에 있었던 내가 보기에는 얼굴 표정이 아주 침착하고 웃음이 맴돌았던 것으로 볼 때, 위대하고 강인한 엄마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한마디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해산의 고통을 내가 겪진 않았지만, 진통할 때 꼬집고 쥐어뜯고 할퀴고 했던 손아귀의 힘으로 봐서는 정말 쉽게 상상이 안 갈 정도로 만만치 않았을 텐데..


아무튼 권투 선수가 왜 자꾸 서로를 껴안으려 하는지 이제 쉽게 이해가 된다. 당시 나도 아내를 필사적으로 껴안을 수 밖에 없었으니까.(-.-)


아빠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아빠가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다만 아기가 태어나서 이틀동안 밥을 한끼도 안 먹었는데도 배가 고픈줄도 몰랐고, 잠을 거의 자지 못했는데도 피곤한 줄도 몰랐고,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는 것만 기억에 남는다.


되돌아 생각해보니 젖 먹이기 위해서 아내와 아기와 씨름하던 것도, 아내의 몸 회복을 위해서 이것저것 해달라는 것 해주던 것도, 아기 목욕시키던 것도, 기저귀 갈던 것도 모두 즐거웠고, 힘든 줄도 몰랐던 것 같다.


아기가 태어난지 4일째 되던 날, 아내에게 한마디 했다.

"이거 애 태어난지 몇달 지난 것 같다."

그러자 아내가 대답했다.

"나도 그래."


아무래도 우리 부부는 많이 노회(?)한 것 같다.

연애도 시작한지 한달만에 다른 이들 결혼 생활 수십년만에 겪는 권태기, 갱년기 모두 지난 것 같더니...

애기 낳고 키우는 것도 앞으로 그럴까 싶다.

설마 애가 태어난지 한달 째 되는 날, '이제 다 키웠다.' 이러면서 이제부터 스스로의 힘으로 살라고 말하게 되는 일은 없어야 할텐데..(O.O)


실제로 예람-그래도 나름대로 아기 이름 고민고민하다가 지었다.(-.-) -이는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내가 알던 신생아들이랑 많이 다른 것 같다. 분만실에 들어가 탯줄을 자를 때 바락바락 울던 애가 곧 눈을 떴다. 장인어른 말씀으로는 울음소리도 지금까지 들었던 갓 태어난 애들 중 가장 크다고 하신다.


젖을 먹는 것도 그렇고, 자다가 웃는 것(-.-?)도 그렇고, 힘차게 발로 차는 것도 그렇고... 정말 얘가 10달 가까운 시간 동안 엄마 뱃속에 있다가 태어난 애기가 맞나? 왠지 막 태어난 애가 아닌 것 같다. 사진을 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얘기가 있다. - 어째 막 태어난 아기 같지 않다. 피부도 탱탱하고, 똘망똘망하게 생긴 게 태어난지 몇 주 된거 같애라고.


사실 나도 그렇다.(^.^). 장모님께서는 옆에서 "아이고, 웃겨 죽겄네. 하나님께서 아기를 통해서 웃게 하시니 그것도 큰 복이네." 라고 말씀하시며 즐거워하신다.


비록 두세시간 정도마다 깨어나서 배고프다고 울어대는 바람에 집에 있을 때 잠은 제대로 못자지만, 이제 조금씩 조금씩 내가 애 아빠가 되었다는 실감이 난다. 지금까지보다 더 아내가 보고 싶고, 다른 아이들을 대했을 때보다 더 눈앞에 아기가 아른거린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축복하시지만,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치열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기 예람이가 이름 뜻 그대로 '예수님의 사람'으로 자라나고, 갈수록 어그러져가는 시대에 '예의바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주의 성령께서 친히 복주시고, 키워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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