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 2009/11/17 09:55

사랑하는 나의 아내, 윤희.


늦은 밤에 퇴근해서 귓가로 들려오는 음악 소리와 따뜻한 커피 한잔과 함께 하며 당신을 생각하는 이 시간. 오늘따라 당신이 너무나도 보고 싶다. 당신의 목소리가 듣고 싶고, 당신과 눈을 마주치고 얼굴을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지만, 대전에 있는 당신은 지금 이 시간에는 곤히 자고 있을 것이기에, 사랑하는 아들 예람이와 함께 깊은 잠을 자며 행복한 꿈을 꾸시도록 성령께서 축복하시기를 기도할 수 밖에. 그래도 당신에게 이렇게라도 이야기하고 싶어.


비록 같은 교회를 다녔지만, 대학 시절에도 서로에 대해서 아는 것은 이름 뿐이었던 우리 사이. 사회 생활을 할 때쯤 되어서는 나는 서울에서, 당신은 대전에서 그렇게 서로 할 일을 하면서 지냈던 우리들.


하나님께서 뜻을 두시고, 내 인생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평생의 반려자이자, 내 모든 것의 절반의 주인으로 당신을 내게로 보내셨을 때는 당신이 어떤 점에서 내게 소중한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내게로 보내신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깊이 묵상하기보다 그저 마냥 좋았었지.


남들 보기에는 어떠하든, 가진 것 없고 내세울 것 하나 없이 오직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시라는 것 하나만 위안삼아 살아가던 내가, 특별한 이벤트나 기억에 남는 것도 없는 청혼을 했을 때, 아무런 고민없이 바로 응해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내 나이 30이 되었을 때 결혼을 하고 새로운 인생이 항해를 떠나게 해달라는 어리석고 연약한 자의 지나간 기도와 서원을 잊지 않으시고 응답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감사드렸어.


지금은 하늘 나라에 계시는 우리 부모님께 드디어 당신들의 아들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한마디 인사를 하게 해줘서 너무 고마워.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서 함께 기도하고, 고민하고, 옆에서 힘이 되어줘서 너무 고마워. 당신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게 해 줘서 너무 고마워.


어느 덧, 우리 결혼한지 2년하고도 한달이 되었네. 아기 예람이가 태어난지 10개월이 되어 가고. 내가 윤희에게 익숙해져 가는 건지, 아니면 윤희가 나에게 익숙해져 가는 건지는 모르지만 날이 갈수록 당신이 함께 사는 것이 점점 더 좋아. 시간이 흐를수록 이쁘게 보이고,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편이라는 생각에 언제나 든든해.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당신이 네게 권해준 '몸에 밴 어린 시절'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은 보면 볼수록 나를 돌아보게 해.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책에 언급되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너무 가슴 아팠어. 여전히 나도 어린 시절에 받았던 상처들, 부모님으로부터 받았으면 했던 사랑들을 가슴 저 깊은 곳에 묻어두고 있었나봐. 그래서 책에 나온 환자들 이야기가 내 이야기 같아서 하나님께 묻게 돼.


'사랑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 세상에는 참으로 아프고, 슬프고, 절망하는 이들이 많아요. 그들에게 사랑을 주소서. 완전한 당신의 사랑을 그들이 알게 하소서.'


그래. 당신이 말한 대로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부모로서 어떻게 말하고, 행하고, 사랑을 전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하게 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사랑하는 예람이에게 아빠로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어떻게 하는 것이 참으로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사랑으로 예람이를 키울 수 있는 것인지. 더 나아가 앞으로 태어날 우리 아이들, 자라고 있는 친척 아이들, 또 세상에서 자라고 있는 다른 아이들이 나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온전히 하나님 원하시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으려면 내가 어떤 마음 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하나씩 생각하게 돼. 멋진 책을 읽으라고 추천해줘서 정말 고마워.


당신과 함께 부여에 갔던 올해 추석은 조금은 당신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하게 되는 기회였어. 할머니와 함께 생활했던 이야기를 당신에게 들었을 때는 마냥 부러웠었어. 나는 전혀 받아보지도 못했던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것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이번에 할머니 산소와 큰집, 고모집에 가서 다시금 당신의 그 시절을 떠올렸을 때는 가슴이 많이 아팠어. 때로는 외로웠고, 때로는 행복했고, 때로는 즐거웠고, 때로는 슬펐을 당신의 어린 시절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마냥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걸 왜 나는 생각하지 못하고 당신이 집에서 이야기했을 때는 공감하지 못했던 것일까.


여보, 미안해. 내가 원하는 바는 있지만, 당신이 싫어하니까 당신에게 요구하지 않는다고 했던 말. 사실 그 말을 당신에게 하기 전에 내가 먼저 당신에게 다가가 당신의 이야기들에 공감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당신이 하나하나 지적하는 것들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틀린 것이 아니어서 너무도 가슴을 깊이 찌르는 것들이기에 내가 상처 입을까봐 먼저 나만을 생각하고 방어하기 위해 당신을 생각하지 못하고, 당신에게 상처입힌 것들.... 미안해.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순간이 지나면 비록 가슴이 찢어지고 상처를 입었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당신을 더욱 사랑스러운 존재로 여기게 하셨어. 그 사랑을 표현하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 사랑하기에 미안하다는 말은 하는게 아니고, 사랑하기에 고맙다는 말은 하는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나봐. 하지만, 사랑하기에 고맙고, 오히려 사랑하기에 미안한 점이 더욱 많은 것을... 그래서 참으로 내 삶은 모순이 많은 것 같아.


하나님께서 앞으로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당신을 한번 더 안아주고, 한번 더 당신 손을 붙잡고 기도하는 내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시기를 기도해.


여보. 이제 시간이 너무 늦었네. 우리 못다한 이야기는 내일 하도록 하자. 당신과 예람이를 비롯해서 대전에 계시는 장인어른, 장모님, 처형 가족들 모두 이밤 평안한 밤이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잘 자, 윤희.

2009/11/17 09:55 2009/11/17 09:55
Trackback Address :: http://www.yongbi.net/trackback/228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오픈아이디로만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 PREV |  1  |  ...  449  |  450  |  451  |  452  |  453  |  454  |  455  |  456  |  457  |  ...  566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