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아내가 말했다.
"당신은 나 만나서 행복한 줄 알아야 돼!"
"그렇지. 근데 왜?"
일단 맞다고 말한 나는 갑자기 아내가 왜 저런 말을 하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뭐, 옳다고 말한 후 왜냐고 묻는 게 좀 이상하긴 하지만,
우리네 삶이 원래 이상한 일들 투성 아닌가? 아님 말고..-.-
암튼 아내의 대답은 이랬다.
동네에서 만난 다른 아이들 엄마들 중에 남편이 집에 안 들어오기를 바라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밥 차려주고, 설거지 하고, 이것저것 귀찮게 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사실 직장에서 만난 애아빠들 이야기를 듣다보면 가끔 푸념할 때가 있다.
'아내가 아이들 신경쓰느라 나한테는 소홀히 한다. 그래서 서운하다.'
그래서 애 엄마들이 저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 이해가 간다.
그래서 물었다.
"근데 당신은 아니잖아?"
"그래서 행복한 줄 알라고! 나야 항상 당신하고 함께 있고 싶지~"
이렇게 이야기하는 아내 앞에서 다른 애 아빠들 이야기 듣고, 나도 가끔 혼자 있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다는 이야기는 죽어도 할 수 없었다. 예람이, 예린이, 그리고 아내 윤희. 새삼스레 나한테 들러붙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여전히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오늘도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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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일상
어제는 아이들 때문에 잠에서 깨지 않고 아침에 알람이 울리기까지 곧잘 잤다.
실제로 아이들이 깨서 아내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을 테지만,
이상하게도 어제 내 귀에는 아이들이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새벽 3시 반경에 깨서 화장실에 갈 때도, 아내와 아이들이 자는 큰방은 조용했다.
문을 조용히 열어보니 모두 곤히 자고 있었다.
출근하려고 일어난 6시 경에도 잠시 문을 열어보니 세명 모두 한참 꿈나라 여행중이었다.
매일 아이를 재우면서 깊은 잠을 자고 온전히 피로가 회복되도록 기도하고 있는데
언제나 신실하게 기도에 응답하시는 주님께 감사드린다.
잠을 푹 자서인지 아침에 나오는 길에 마음이 기꺼웠다.
6시 25분에 집에서 나왔는데 날이 훤했다.
하늘은 맑았고, 공기는 신선했다.
그래서 기뻤고, 또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6시 40분 버스를 타면서 감사를 드렸고,
버스 타고 오면서 바라본 풍경에 대해서 감사드렸다.
이른 시간 대중교통과 자가용을 이용해서 이동하는 많은 차량의 물결을 보면서
그들이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기를 기도드렸다.
7시 반에 신한은행 본점에 도착하기까지 걸어오는 길에서 기도했고,
아침에 아이들이 일어나 웃으면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아내가 아이들에게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오늘 하루 평안 가운데 지낼 수 있도록
우리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기도했다.
오늘 우리 가족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기대하며 소망중에 하루 보내게 하시기를 기도했다.
공황증후군을 앓고 있는 저기 먼 창원에 살고 있는 사촌 형님의 막내딸에게서 문자가 왔다.
"삼촌. 저 지금 버스 타고 학교 가요.~"
학교 가기 싫고, 학교가 재미없다던 아이가 학교 간다면서 이른 아침에 문자를 보내왔다.
감격스러웠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 아이를 하나님께 맡기오니 온전히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이 아이의 장래 또한 하나님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 시키시는 일을 하는 자로 성장시키시기를..
부디 부족한 저로 하여금 하루를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시작하게 하시고,
또 하루를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마무리하게 하소서.
자식들에게 있어 아버지는 어려움의 대상일 것이다.
대부분의 아버지는 자식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하고
자녀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엄마와 함께 보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 있어서 우리 아버지는 나와는 더더욱 시간을 같이 보내지 못하셨다.
엄마가 소천하신 후, 정확히 10년을 더 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는데
초등학교 3 ~ 6학년 4년 동안을 빼면 대학 1학년 시절까지 6년 동안 함께 지낸 날들이 얼마 되지 않는다.
중학교 시절에는 지금도 가족처럼 지내고 계시는 담임 선생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토요일 ~ 일요일에만 집에 가서 아버지와 함께 지냈고,
고등학교 때는 2년동안 추석때 2~3일간, 대학교 때는 그나마 여름 방학때 1주일 정도 집에 갔었다.
그리고 대학 1학년 기말고사 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
그나마 오랫동안 함께 지냈던 초등학교 시절에는
엄마의 빈자리를 술과 담배로 채우려고 하셨던 아버지와
엄마를 대신해서 숱하게 부부싸움이 아닌 부자싸움(?)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것이 아버지와의 추억의 대부분이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너무 집에 가지 못해서
한번은 글도 읽지 못하시는 아버지가 물어물어 학교까지 버스를 타고 오신 적이 있었다.
얼마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없는 돈을 가져오셔서
그나마 용돈이라고 몇만원을 주고 가시는 뒷모습을 보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 함께 살 때의 아버지는 나에게 공포의 대상이셨고, 지겨움의 대상이셨다.
그러나 중학교 이후로의 아버지는 안타까움과 가슴 아픈 대상이셨다.
아버지도 돌아가시기 직전 내 이름을 부르셨다고 한다.
도대체 내가 무엇이기에 부모님은 두 분 다 돌아가시기 전에 나를 부르며 걱정하셨을까?
다른 형제들도 많이 있고, 실제로 두 분 곁을 지킨 형제들은 누나들이었는데.
이제 내가 아빠가 되어보니 자식들에 대한 사랑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다.
한편으로는 자식으로서, 한편으로는 아버지로서 이제서야 내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아버지로서 자식들이 귀엽고 이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다만 표현 방법을 모르거나, 자신의 기준에 맞춰 자녀들을 키우다 보니
받아들이는 자녀들 입장에서 때로는 의도와는 다르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오늘을 살아가는 아버지들은 마땅히 눈물을 흘릴만한 곳이 없다.
가족을 책임져야할 가장으로서 강한 모습을 보이면서 가정을 지탱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 아버지도 그러셨던 것 같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그러나 나 이제 바라기는,
사랑하는 아내한테는 기쁘고 즐거운 일들 뿐만 아니라 힘든 일들, 가슴 아픈 일들을 모두 얘기하고,
그 넉넉한 품안에서 눈물을 흘릴 때는 함께 울고 싶다.
그런데.. 우리 마님께서는 받아줄 것 같기는 한데, 과연 내가 시도할 수 있을까?
세상 모든 아버지들이 나와 같아서 진정으로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뤄가기를...
아버지.
엄마와 함께 오늘의 나를 있도록 하나님께서 부모의 연으로 묶어 주신 분.
살아 생전 멀리서 자식의 소식을 들으며 기뻐하고,
얼굴을 볼 수 없음에 그리워하고, 서운해 하시던 분.
항상 뵈러 가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하면 '공부하는게 더 힘들지?'라며 오히려 안타까워 하시던 분.
정말 진심으로 사랑하고, 감사드린다고 왜 그때는 자주 표현하지 못했을까.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려고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래서 아직 곁에 계신 장인어른, 장모님이 더욱 눈에 밟힌다.
세상 모든 아버지들.
오늘도 힘내시고, 매일매일 어제보다는 오늘이 조금 더 나은 행복을 만들어 가시기를..
TAG 일상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엄마는 평범한 존재가 아니었다.
초등학교 3학년 전까지는 아버지보다 더 항상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셨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로는,
아주 오랫동안 때로는 가슴 절절히 사무치는 그리움의 대상이셨다.
때로는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세상의 부조리와 맞닥뜨릴 때는 서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이웃집에 김치를 얻으러 가거나,
차비 100원이 없어 8킬로미터 가까운 거리를 걸어서 아침에 학교에 가야 할 때는
수치심과 부끄러움에 절망에 가까운 심정을 느끼게 하는 대상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와 한가지 내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어린 시절 엄마 살아 계실 때 누렸던 사랑에 대한 빛바랜 추억뿐이다.
어린 시절 그렇게도 원망하고, 서러워하고, 절망하게 했던 순간들도
이제 모두 추억으로 남아서 엄마가 이 시대를 나와 함께 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돌아가신 흔적으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남겨주신 선물이라 여긴다.
신경숙씨가 쓴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이 시대 엄마의 자화상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자세히 읽어보지 않아서 내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제목을 듣고 나서 가슴이 아팠다.
어쩌면 내가 이제 부모가 되어 자식을 키워보니
조금이나마 부모의 심정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서였나 보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나를 걱정하셨다던 그 심정을 돌이켜 짐작해 보면,
엄마가 얼마나 나 때문에 이 세상에 미련을 두셨을까 생각이 된다.
결코 나 이제 하나님께 돌아가니 내 마음 평안해 찬송을 부르시지는 않으셨을 것 같다.
하지만, 정말 하나님이 도우심으로 이렇게 잘 자라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사회에서 인정받고 잘 살고 있으니 이제 부디 천국에서 하나님 품에 안겨 행복하시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결혼하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부모님도 주셨다.
그 부모님께는 살아 생전 내 부모님께 못해드렸던 여러가지를 해 드리고 싶은데, 마음만으로 그칠 때가 많다.
아내와 함께 장인 어른, 장모님께 좀 더 평안히 지내실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좀 더 심도 있게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TAG 일상
어제 퇴근 후에 저녁을 먹을 때의 일이다.
퇴근해서 집에 가면 일단 옷을 갈아 입고,
주머니에 있던 지갑과 핸드폰을 꺼내서 책상 위에 놓는다.
그러면 집에 문열고 들어갈 때부터 "아빠다!" 외치면서 반기던 아들 예람이는
핸드폰을 보자마자 "아빠 핸폰~" 하면서 핸드폰을 가져가 이것저것 눌러보면서
통화를 하기도 하고, 자기 옷 속에 넣어보기도 하며 놀기 시작한다.
예람이가 핸드폰을 한참을 갖고 놀다가 책상 위에 올려놓고
나는 물 말아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핸드폰에서 문자 메세지가 날아올 때의 신호음이 들렸다.
그래서 나는 얼른 핸드폰을 가져다가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내용은 딸랑 한 줄이었다.
"연락 바랍니다."
그리고 발신자 번호는 ***-****-**** 이었다.
보통 핸드폰 번호가 주소록에 등록되어 있으면 사람 이름이 뜬다.
그런데 전화번호가 떠 있길래 아내한테 아는 번호냐고 물어보았다.
아내는 모르는 번호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핸도폰을 열고 답장을 적기 시작했다.
"누구신가요?"
문자 발송을 하려고 하는 찰라.
아내가 한마디 했다.
"그거 당신 핸드폰 번호 아냐?"
그랬다.
발신인 번호는 내 핸도폰 번호였다.
예람이가 핸드폰을 가지고 놀다가 문자메세지를 그냥 나한테 보낸 것이다.
처음 문자 메세지 작성하려고 들어가면
디폴트로 '연락 바랍니다'라는 문장이 연회색으로 찍혀 있다.
그런데 왜 나는 내 핸드폰 번호를 모르고 있었을까....
'누구신가요?'라는 문자 메세지를 내가 나한테 보낼 뻔 했다.-.-
요즘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다...ㅜ.ㅜ
TAG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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