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오뎅 네개와 보내기 한판 :: 2009/11/17 09:40

봄이 성큼 다가왔다.

비록 종일 매섭던 추위는 이제 물러가고 낮에는 오히려 푸근한 기운이 있지만, 그러나 여전히 아침 저녁으로는 서늘하고, 새벽에는 옷깃을 여미게 하는 싸늘한 기운이 감돈다.

요즘 들어 감기에 걸리는 이들이 많은 것이 반드시 인간이 연약해져서만은 아닐 것이다.

신입생 입학식에서 모든 감기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을 누군가가 만들어 낸다면, 그 사람은 노벨의학상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했다던 하버드 의대 어느 총장의 말이 떠올랐다. 나도 감기약이나 만들어서 팔아볼까?

대전에 내려 가기 위해서 사무실에서 나와 부랴부랴 분당선 야탑역 가는 지하철을 탔다. 퇴근 시간이라서인지 사람들이 어지간히도 북시럭댔다.


평일이기 때문일까? 반대로, 성남시외버스터미널은 한산했다. 오후 7시 20분에 유성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눈을 감았다. 잠깐 잠들었나 보다. 눈을 떠보니 서울 톨게이트였다. 그런데 시계를 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창밖을 내다보니 차가 주우욱 밀려 있었다.

'이런. 빨리 가는 건 고사하고 제시간에 도착하기도 힘들겠군.'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 마님의 기분이 언짢아 보여서 일찍 도착해-그래도 밤 9시는 넘겠지만- 식사도 같이 하고 충남대 캠퍼스도 거닐고 싶어서 내려가는 길이었는데 조금 차질이 생길 것 같았다.

그래도 버스 안에서 어찌할 길이 없어 마음 편히 먹고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요즘 들어 잠을 자도 자는 것 같지 않고, 계속 몸이 피곤하다. 한참을 꿈나라 여행하고 돌아와보니 회덕을 지나 유성을 바로 코 앞에 두고 있었다.

그때 핸드폰으로 마님의 호출이 왔다.
'나 지금 집에 들어갈래.'

밤 11시까지, 아니 나 도착할 때까지만이라도 교회에서 공부를 하겠다더니 어지간히 힘들었나보다. 그래도 거의 도착했는데 이왕이면 집에 같이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말했다.


'이제 한 5분 정도면 도착해. 충대 앞에서 보자.'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왔다.
'나 핸드폰 집에 두고 왔어.'
'그래. 알았어. 내가 충대 앞으로 갈께.'

우리는 그렇게 통화를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충남대 정문에서 유성 사거리쪽으로 한참을 내려오다 보면 홍인호텔이 있다. 버스는 대전정부청사를 가기 전에 홍인호텔 건너편 간이 정류장에서 정차했다. 내려서 충대정문으로 걸어가는데 꽤 추웠다. 내복을 입었는데도. 그래도 부지런히 걸어서 충대 앞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정류장의 모든 사람들을 하나하나 돌아보아도 찾는 사람은 없었다.

아직 도착 안했나보다. 생각해보니 배가 고팠다. 추위에 따뜻한 국물 생각도 났고. 그래서 바로 옆에 있는 자동차에서 오뎅파는 아저씨에게 다가가서는 하나에 500원하는 오뎅을 먹었다. 신호가 바뀔 때마다 횡단보도를 건너오는 수많은 학생들 틈에 혹시나 우리 마님이 계실까 두리번거리기를 얼마나. 오뎅을 4개째 먹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수화기 건너로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짜증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나 지금 충대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왜 안와?'

'어라? 나 지금 건너편 횡단보도 앞에서 오뎅 먹고 있는데?'

'뭐야, 지금. 난 추운데서 기다리고 있는데 오뎅을 먹고 있단 말야?'

'난 집에 간다고 해서 충대 앞 버스 정류장으로 올줄 알았지.'

'자기가 충대 캠퍼스 산책하자면서?'


어라. 왜 얘기가 그렇게 돌아가냐.(-.-).

집에 가는 게 아니었어? '얘 많이 화났을 수도 있겠다.'

부랴부랴 계산하고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충남대 정문에서 보기로 해 놓고 추위에 떨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혼자서 따뜻한 오뎅을 먹고 오니 좋더냐는 소리를 들었다. 비록 짜증을 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어라. 그래도 이건 내가 생각했던 것이 아닌데.

나는 집에 들어가는 길에 충대 앞에서 만나자고 했으니 당연히 버스 터미널로 올 줄 알았다. 도착해서 찾아보니 사람은 없고, 핸드폰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연락할 방법은 없고, 춥고 배고픈데 바로 옆에 오뎅 파는 차는 서 있고. 그래서 오뎅을 먹고 있었는데. 단지 그것 뿐이었는데.

그래도 추운데 오래 기다리면 기분이 나쁘겠지. 구차하게 이런저런 변명을 해서 무엇하리 하고서는 '에이. 삐졌냐?' 하면서 뒤에서 껴않았더니 '비켜!' 하면서 나를 뿌리쳤다. 덕분에 내 가방은 땅바닥에 헤딩하는 신세를 졌고.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 '어쩌라고! 짜증나~'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내 머릿속을 맹렬하게 뒤흔들었다.

'왜 자기가 짜증나? 다 자기 잘못이면서.'

음. 그게 전부 다 내 잘못이었나? 집에 들어간다고 해서 같이 가자고, 충대 앞에서 보자고 통화하고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린 것도 내 잘못이고, 기다리다 춥고 배고파서 오뎅 네개 먹은 것도 내 잘못이고, 핸드폰이 없어 연락을 못한 것도 내 잘못이고, 오뎅 먹으면서 충대 정문을 찾아갈 생각은 안 하고 혹시나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있을까 싶어 뚫어져라 여기저기 몇번이고 두리번거리며 찾은 것도 내 잘못이고, 그래도 기분 풀어주겠다고 서울에서 유성으로 퇴근하여 괜히 마님을 기다리게 한 것 그 자체도 내 잘못이고...

이게 뭔가 싶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어느 구석에 숨어 있던 뭔가가 욱하고 치밀어 올라왔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누가 그랬던가. 참을 인자 세번이면 살인을 면한다고. 그러나 난 화가 났을 때는 그 자리를 피하는 편이다. 소모적인 감정으로 에너지를 낭비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충대를 산책하려는 생각이었는지 버스 정류장과는 반대쪽으로 가는 윤희에게 '너 혼자 가라.' 그렇게 말하고서는 바로 뒤돌아서 그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는 버스 정류장에서 그 추위에 40여분을 기다렸다. 집에 가는 길에 버스 정류장으로 오겠지.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마님은 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해 집에 갔나보다 생각하고는 충남대 캠퍼스로 올라갔다. 가는 길에 농구코트에서 농구를 하는 학생들이 보였다. 그 자리에 서서 구경하기를 얼마나. 눈은 농구를 보고 있었지만, 생각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비록 마음은 상했지만, 후회가 됐다. 왜 그 순간을 넘기지 못했을까. 왜 그렇게 너그럽지 못하고 속 좁게 행동했을까. 아내의 입장에서는 충대 앞에서 만나자는 얘기가 산책하자는 뜻으로 알아들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 생각을 그 순간에는 못했을까.


난 아직도 멀었다. 그 순간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지 못하고 혈기에 치우쳐 상처를 주고 받은 나는 어른이 되려면 정말 아직 멀었나 보다. 하나님께 하소연하고, 기도하고, 이런저런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며 충남대 캠퍼스를 걸어 올라갔다.

택시를 타고 집에 먼저 간 마님 또한 한시간 넘게 연락이 없으니 내가 걱정됐었나 보다. 조금 있다가 들어가겠다고 통화를 하고서는 한시간 정도 걸려서 집까지 걸어갔다. 집에 들어가보니 아내 윤희는 서재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씻고 안방 침대에 누워 있으려니 건너편 서재에서 웃으면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아내 목소리가 들렸다.


두 눈을 감고 있으려니 슬펐다. 심력을 너무 써서 그랬을까. 침대에 누운지 얼마 안 돼서 잠들었다. 대전에 내려온 원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엉망이 되어버린 기억을 않은 채로 서울로 출근하기 위해서 새벽에 일어났다.

씻고 나오다보니 불빛에 어스름하게 보이는 아내의 얼굴이 보였다. 예뻤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팔불출인가 보다 생각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잠이 깼나 보다. 아내가 침대에 누워 안아 달라면서 팔을 벌렸다. 가볍게 안아 주면서 더 자라고 말하고서는 출근했다.

같이 저녁먹고 충남대 캠퍼스를 거닐며 대화를 나누자는 계획으로, 한손에는 아내의 손을 잡고 한 손에는 음료수를 들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는 생각으로 집에 내려왔는데, 결국에는 오뎅 4개 먹고 보내기 한판으로 아내를 집에 보내버린 결과가 되었다.


누가 말했는가?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고. 말 그대로다. 물은 언제 칼로 베였냐는 듯이 다시 합해지지만, 그건 단지 결과일 뿐이다.


아무리 원상태로 돌아가는 물일지라도 칼로 베이는 그 순간에는 참으로 고통스러웠으리라.

아무리 칼로 물베듯이 다시 원상복귀되더라도 결코 다음부터는 부부싸움이라는 것을 하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그것이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던가. 싸움이 없기를 바라기보다는 내가 지금보다 좀 더 너그럽고 현명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옳은 일일 것이다.


한편 오뎅 네개에 보내기 한판인데 오뎅을 한 열개쯤 먹었을 경우에는 어떤 일이 발생할지 은근히 걱정되기도 한다.

그때는 내가 지구를 떠나게 되려나...?=.=

2009/11/17 09:40 2009/11/1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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