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이야기 하나 - 똥냄새 :: 2015/07/02 23:07

요즘 들어 문득 생각이 난다.


처음 결혼했을 때, 아내가 첫째를 임신한 것을 알았을 때, 첫째가 태어났을 때,
둘째를 임신했을 때, 둘째가 태어났을 때......

결혼 후 신혼 생활과 큰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며 즐거웠던 기억들,
둘째 아이가 태어나 아이들 두 명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기뻐했던 순간들...

그런데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가 있다.
예전 싸이월드가 한참 유행일 때, 싸이월드에서 육아일기를 남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페이퍼라는 서비스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비장한(?) 마음으로 아주 장황한 육아일기 한편을 페이퍼에 연재했다.

까맣게 잊고 있다가 개인 홈페이지를 개설하고도 한참 후에 육아일기를 옮겨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동안 방치했던 싸이월드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뿔싸. 페이퍼 서비스가 종료되어 페이퍼에 연재했던 장황한 육아일기는 찾을 길이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언젠가 써야지 하면서
이제까지 바쁜 일정에 잊고 있다가 거의 5~6년이 지나서야
그때 그 사건에 해당하는 잊혀져버린 글을 올리는 것 같다.

때는 첫째 예람이가 태어난지 어언..... 잘 기억 안 난다.
하여튼 예람이가 기저귀를 차고,
내가 리얼게인이라는 회사에 팀장으로 근무할 때니 대충 2007년이거나 2008년도였던 거 같다.

그때는 예람이가 2006년 12월 생이니 2~3살 경이었을까?
당시에는 바쁜 일 때문에 보라매 공원 근처에 있던 회사에서
부천 범박동에 있던 집까지 거의 매일 늦은 시간에 퇴근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고통스러웠던 때는,
아내는 피곤해서 잠을 자고, 아들 녀석은 잠이 별로 없어서 내가 안고 재워야할 때였다.
그냥 잠만 안 자면 좋은데, 왜! 왜! 왜! 안고 재울 때 꼭 똥을 싸냐고!!!

비록 기저귀를 차고 있었지만, 우리 아들 똥 냄새. 장난 아니다.
나이가 10살인 지금은 더 심하지만, 두어살 밖에 안 먹었을 때도 똥냄새는 발군이었다.
기저귀를 열고, 물티슈로 엉덩이를 닦을 때면.... 그냥 숨을 참았다. 다 닦을 때까지.
닦다가 조준을 잘못해서 손에 묻을 때는 정말.... 제길. 지금도 울고 싶다.
이순신 장군께서는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하셨지만, 정말 그때의 내 심정은 누구에게라도 말하고 싶었다.
우리 아들 똥냄새를.

하여튼, 그때 기저귀를 갈면서 아들에게 말했던 것 같다.
"아들아, 넌 언제 기저귀 혼자 갈래?"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그날도 역시 밤늦게 퇴근했다. 피곤한 마님은 내가 들어올 때쯤 되니 주무시고 계시고..
거실에 있던 아들 녀석이 나를 반겼다. 이뻤다. 안아주고 싶었다.
역시 아빠를 반기는 것은 아들밖에 없구나. 두 팔을 벌리고 한 달음에 다가갔다.

그런데.
어디선가 냄새가 났다. 순간 나는 내가 개똥 밟은 줄 알았다.
신발에 묻었나 살펴보니 안 묻었다. 난 심각해졌다. 양말에 묻었나 싶어 양말을 벗어 냄새를 맡아 보았다.
역시 발냄새만 났다. 더 심각해졌다. 옷에 묻었나 싶어 옷을 다 벗어들고 냄새를 맡아 보았다.

한참을 설레발을 치다 보니 결정적으로 잊고 있던 것이 생각이 났다.
왜 아들을 먼저 살펴볼 생각을 못했을까?
그렇다. 내 아들이 범인인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아들에게 달려가서 엉덩이를 깠다.
그런데 왠걸? 기저귀가 보여야 하는데 살이 보였다. 깨끗했다.

용감하게도 아들에게 기저귀를 안채우고 데리고 있었던 마님의 용기에 찬사를 보냈다.
하긴, 우리 마님은 기저귀를 갈다가 아들녀석이 오줌을 싸면 순간적으로 기저귀로 오줌을 막을 정도로 순발력이 있었다.하여간 아들의 깨끗한 엉덩이를 보고 안심하고 아들을 안아 들었다.
그런데 냄새가 몇배로 심해졌다..ㅠ.ㅠ. 에이씨.

아들을 데리고 욕실로 들어가 바지를 벗기고 엉덩이를 씻겼다.
똥구녕 사이로 똥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마치 나를 놀리는 것 같았다. 아니, 인사했나? ㅠ.ㅠ
깨끗하게 씻기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나니 아들 녀석 엉덩이가 뽀송뽀송했다.
들어간 김에 나도 씻고 나와서 잠을 자려고 들어가는데, 왜일까?
거실에서 여전히 똥냄새가 났다. 이런 망할. 도대체 뭐야, 이건?

그때부터 똥냄새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거실 구석구석을 뒤진 끝에 범인을 잡았다.
범인은 부엌 한구석에 놓여 있던 휴지통이었다.
쓰레기통에는 우리 아들의 소중한 똥(?)이 잔뜩 묻어 있는 기저귀가 거꾸로 쳐박혀 있었다.

난, 순간 안방으로 돌진해서 마님을 들이받으려고 깨웠다.
아니, 이 여자가 왜 아들 기저귀를 갈고 나서 똥을 그대로 쓰레기통에 쳐박아 놔?
그런데 우리 마님. 자기는 기저귀를 간 적이 없다면서, 잘 자는 사람 깨웠다고 오히려 나를 혼냈다.
들이받지 않기를 잘했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
아빠의 독백을 들었던 우리 아드님께서 자기 혼자 똥을 싸고 기저귀를 벗어서 쓰레기통에 쳐박아 놓은 것이다!!!
나는 똥냄새로 우리 아들의 진가를 발견했다!

이 얼마나 천재와 같은 아들인가?
그 나이에 혼자 똥싼 기저귀를 벗다니. 옷에 똥도 안 묻히고.
그 나이에 아빠를 감쪽같이 속였다. 얼마나 대단한가?
우리 아들 대단하다고 혼자 신나서 잠들 때까지 안고 거실에서 돌아다녔던 기억이 엊그제의 일 같다.

그런데 갑자기 짜증이 난다. 주변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그 지독했던 예람이 똥냄새가... 무려 7~8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난다.
에이. 디러.

2015/07/02 23:07 2015/07/02 23:07
Trackback Address :: http://www.yongbi.net/trackback/732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오픈아이디로만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
< PREV |  1  |  ...  71  |  72  |  73  |  74  |  75  |  76  |  77  |  78  |  79  |  ...  566  |  NEXT >